철강의 덤핑은 막으면서, 소프트웨어의 덤핑은 왜 방치하는 것입니까?
- 7월 1일
- 6분 분량
마크베이스는 13년전부터 “시계열 데이터베이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SW를 정말 바닥부터 하나하나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모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벤처기업입니다.
최근 공항공사에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나왔던 “시계열 데이터베이스”의 요구 사항이 눈에 밟혔습니다.
최초에는 외산 시계열 데이터베이스 제품명 2개, “InfluxDB, TimeScaleDB”가 적혀 있었고, 당연히 마크베이스는 없었습니다.

마크베이스가 저 리스트에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작고, 영세한 국내 SW기업의 마케팅 역량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문제는 저 외산 SW가 무려 공짜라는 것입니다.
만일 위와 같다면, 국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 중소 SI 기업이 제안할 경우에는 예외없이 100% 저 위의 외산 공짜 SW를 제안합니다.
마크베이스가 거기에 끼어들 틈은 전혀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공항공사에서 국산 “시계열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벤더명을 제외한 일반 명사로 RFP를 만들어 주시는 바람에 저희들에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국산 철강이 저가로 들어오면 칼같이 반덤핑 제소를 국가차원에서 진행합니다.
그런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초거대 VC가 몇천억을 투자한 미국 SW 기업이 공짜로 SW를 뿌려대는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한마디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값싼 수입 철강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 정부는 즉시 반덤핑 관세를 검토합니다.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들어온 물품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주고, 그 저가 수입과 산업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무역구제 조치가 발동됩니다. 실제로 무역위원회도 덤핑방지관세 조사요건으로 덤핑물품의 수입, 국내 동종산업의 실질적 피해, 그리고 양자 간의 인과관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철강을 원가 이하로 팔면 국가가 산업 보호를 위해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공짜로 뿌려 국내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왜 같은 잣대로 다뤄지지 않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현행 반덤핑 제도를 소프트웨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덤핑 제도는 본래 물리적 상품이 국경을 넘는 상황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가격, 수입 물량, 원산지, 정상가격, 국내 동종 상품을 서로 비교할 수 있어야 제도가 작동합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다운로드되거나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됩니다. 동시에 서비스이자 지식재산이며, 때로는 플랫폼이고, 때로는 데이터 생태계 그 자체입니다. WTO도 서비스 무역을 국경 간 공급, 해외 소비, 상업적 주재, 자연인의 이동 등 여러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디지털 기술은 상품과 서비스와 지식재산이 국경을 넘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핵심은 법적 형식이 아니라 경제적 효과입니다. 외국의 거대 기술기업이 막대한 자본, 클라우드 인프라, 정부 연구지원, 생태계 지배력을 바탕으로 핵심 소프트웨어를 무료 또는 극저가로 공급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소비자에게 이익처럼 보입니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구매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개발자는 손쉽게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예산 담당자는 당장의 비용 절감을 성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은 유지보수 수익을 잃고, 연구개발 인력을 줄이며, 결국 시장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무료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특정 플랫폼, 특정 클라우드, 특정 API, 특정 데이터 생태계에 대한 구조적 종속입니다.
이는 제조업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온 덤핑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작동하는 단위가 다를 뿐입니다. 철강 덤핑은 톤 단위로 측정됩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덤핑은 생태계 단위로 작동합니다. 철강 덤핑은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는 데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덤핑은 한 나라의 기술 내재화 능력 자체를 약화시킵니다. 철강 덤핑은 재고와 가격이라는 눈에 보이는 지표로 비교적 빨리 드러납니다. 반면 소프트웨어 덤핑은 표준, 인력, 데이터, 운영 노하우, 유지보수 체계의 붕괴라는 형태로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산업의 뿌리가 말라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짜니까 좋다”는 단순한 인식은 매우 위험합니다. 가격이 0원이라는 사실이 비용도 0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비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기술지원 비용, 보안 업데이트 비용, 장애 대응 비용, 클라우드 전환 비용, 데이터 이전 비용, 특정 기술에 종속된 인력의 재교육 비용이 시차를 두고 청구서처럼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무료였던 선택이 나중에는 가장 비싼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경쟁법은 이미 이런 구조를 오래전부터 다뤄 왔습니다. 낮은 가격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롭습니다. 그러나 지배적 사업자가 원가 이하 가격으로 경쟁자를 시장에서 몰아낸 뒤 장기간 초과가격이나 플랫폼 지배력으로 손실을 회수할 수 있다면,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구조가 됩니다. 무료 소프트웨어가 산업 전체의 혁신을 촉진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 사업자가 경쟁자를 제거하고 장기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회수하는 수단으로 무료 배포를 활용하는 경우도 똑같이 존재합니다.
다만 모든 오픈소스나 무료 소프트웨어를 덤핑으로 몰아세우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픈소스는 현대 소프트웨어 산업을 떠받쳐온 중요한 혁신 기반입니다. 리눅스, 데이터베이스, 개발도구, AI 프레임워크에 이르기까지 오픈소스는 전 세계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공개 여부가 아닙니다. 문제는 시장에 미치는 효과입니다. 순수한 기술 공유, 커뮤니티 기반 혁신, 상호 호혜적 생태계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 보조금, 초거대 VC에 의한 적대적 특정 SW 분야 붕괴 전략, 독점적 클라우드 인프라, 폐쇄적 API, 사실상의 표준 장악, 공공시장 잠식 전략이 결합된 형태의 무료 배포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것은 기술 공유가 아니라 시장 장악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국내 산업 기반을 허무는 새로운 형태의 덤핑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해외 오픈소스를 표방한 SW 기업이 받은 투자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순위 | 기업 | 대표 제품 | 누적 투자금(USD) | 원화 환산(약) |
1 | Cloudera | CDH, Cloudera Data Platform | 11억 달러 | 약 1.5조 원 |
2 | Confluent | Confluent Platform | 9억 달러 | 약 1.2조 원 |
3 | HashiCorp | Terraform, Vault, Consul | 3.49억 달러 | 약 4,800억 원 |
4 | MongoDB | MongoDB Enterprise | 3.11억 달러 | 약 4,300억 원 |
5 | InfluxData | InfluxDB Enterprise | 2.39억 달러 | 약 3,300억 원(마크베이스의 경쟁자입니다) |
6 | Elastic | Elasticsearch, Kibana | 1.62억 달러 | 약 2,200억 원 |
7 | Cockroach Labs | CockroachDB | 약 6.3억 달러 | 약 8,600억 원 (최근 투자 기준으로는 실제 순위는 3위권) |
8 | Redis Ltd. | Redis Enterprise | 약 3.5억 달러 | 약 4,800억 원 (최근 투자 기준으로는 HashiCorp와 비슷한 수준) |
9 | DataStax | DataStax Enterprise | 약 3.4억 달러 | 약 4,700억 원 |
10 | Percona | Percona Server, Percona XtraDB | 약 1.7억 달러 | 약 2,300억 원 |
이 기업들은 저 어마어마한 자금을 바탕으로 십수년간 공짜 SW를 표방하면서, 사실상 SW 덤핑을 전세계를 상대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정책을 바꾸는 전략 (오픈소스 → 상용화 → 라이선스 변경 또는 Enterprise 기능 강화)을 통해 상업화를 가속화 합니다.
이러한 행태에 제동을 거는 규제는 현행 통상 규범에 이미 그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반덤핑이 가격 차별에 대응하는 제도라면, 상계관세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재정적 기여나 가격지원으로 특정 기업 또는 산업이 혜택을 받고, 그로 인해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다루는 제도입니다. 무역위원회 역시 상계관세를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재정적 기여, 소득·가격지원, 특정 기업 또는 산업에 대한 제한적 혜택과 연결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외국 정부의 보조를 받은 기술, 거대 플랫폼의 교차보조를 받은 무료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판매를 위한 미끼 상품, 시장 지배력 확보를 노린 무료 AI 모델과 데이터베이스가 국내 산업을 실질적으로 훼손한다면, 이를 단순한 소비자 혜택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전통적 반덤핑 관세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는 “디지털 덤핑” 혹은 “소프트웨어 산업피해”라는 새로운 정책 범주를 논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책 대응이 곧 관세 부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는 관세보다 훨씬 정교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공공조달에서는 무료 여부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총소유비용, 기술지원 가능성, 보안 책임, 국내 기술 축적 효과, 데이터 주권, 장기 종속 위험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과 공공 인프라 사업에서는 외산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유지보수, 확장, 교육, 기술 내재화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핵심 인프라 소프트웨어라면 국내 대체 가능성, 소스코드 검증 가능성, 장애 대응 주권을 별도 평가 기준으로 두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금 싸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우리 스스로 고치고, 운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WTO 차원에서도 전자적 전송에 대한 관세 문제는 더 이상 한가한 논의가 아닙니다. 1998년 전자상거래 작업계획 채택 이후 회원국들은 전자적 전송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모라토리엄을 약 2년 단위로 갱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6년 카메룬에서 열린 제14차 각료회의에서는 다자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모라토리엄이 그대로 만료되었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회원국은 복수국간 전자상거래협정의 임시 이행을 선언하며 별도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교역이 더 이상 통상 의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제조업은 소프트웨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공장, 발전소, 철도, 배터리, 반도체, 방산, 로봇, AI 인프라는 모두 소프트웨어 위에서 작동합니다. 소프트웨어는 이제 산업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산업의 두뇌이고, 신경망이며, 운영체계입니다. 그런 핵심 영역을 외국의 무료 공급에만 맡겨두는 것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산업전략은 될 수 없습니다. 당장의 예산은 아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술 주권과 산업 생태계를 잃는다면, 그것은 결코 싼 선택이 아닙니다.
이제 공정무역의 기준 자체도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컨테이너 안의 물건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앞으로는 클라우드, API, 데이터, AI 모델, 데이터베이스, 운영체제, 개발 플랫폼까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가격표에 0원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시장에 미치는 피해까지 0원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덤핑은 가격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격은 없지만, 그 뒤에는 표준 장악, 데이터 종속, 기술 인력의 붕괴, 국내 기업의 퇴출이라는 훨씬 더 무거운 비용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철강의 덤핑을 막는 이유는 철강회사 몇 곳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산업 기반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소프트웨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더 이상 주변 산업이 아닙니다. 국가 경쟁력의 기반 산업입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공짜 소프트웨어는 언제 혁신이고, 언제 디지털 덤핑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