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장려"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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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의 대가는 항상 뒤늦게 청구됩니다
정부는 공공정보화 사업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도입을 장려합니다. 특정 벤더에 종속되지 말자, 라이선스 비용을 아끼자, 기술을 개방하자. 명분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명분이 훌륭하다고 해서 결과까지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라이선스가 무료라는 것은 비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설치 비용, 통합 비용, 성능 검증 비용, 보안 패치 비용, 장애 대응 비용, 인력 교육 비용, 버전 업그레이드 비용, 데이터 이전 비용, 장기 유지보수 비용. 가격표에서 한 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비용은 다른 줄에 나눠 적혔을 뿐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공 시스템의 특수성입니다. 행정, 철도, 전력, 의료, 세금, 재난 대응 시스템은 무너졌을 때 "커뮤니티에 문의해 보겠다"고 말할 수 없는 곳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인프라에 책임 없는 무료 소프트웨어를 얹어 놓고, 그 유지보수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는 정작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국민의 불편에 대해 어떤 의무도 지지 않습니다. SLA도 없고, 보안 대응 체계도 없고, 긴급 패치를 약속한 계약서도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가져다 쓰는 물건이 아니라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 인프라인데, 정부는 그 책임의 무게를 진지하게 따지지 않고 있습니다.
종속을 피하려다 더 깊은 종속으로
"벤더 종속을 피하기 위해 오픈소스를 쓴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다는 것과 특정 생태계에 묶이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소프트웨어 종속은 코드 한 줄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클라우드 운영환경, API, 데이터 포맷, 인증 체계, 배포 도구, 기술지원 조직에서 발생합니다. 데이터베이스를 오픈소스로 바꾸어도, 그 데이터베이스가 특정 글로벌 클라우드의 관리형 서비스 위에서 돌아가고, 주변 도구와 운영 노하우가 모두 해외 플랫폼에 묶인다면 종속의 뿌리는 더 깊어집니다. 국내 기업과의 계약은 끊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해외 플랫폼에 행정 데이터와 운영 권한을 통째로 맡긴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벤더 종속을 피하려다 생태계 종속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지금 정부 오픈소스 정책이 만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시장을 잃는다는 것은 미래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공공시장은 단순한 매출처가 아닙니다. 데이터베이스, 미들웨어, 보안, 관제, 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공공시장은 국내 기업이 제품을 검증하고, 레퍼런스를 쌓고, 유지보수 수익으로 다음 버전을 만들어 나가는 기반입니다. 공공 부문이 첫 번째 고객이 되어주지 않으면, 국내 기업은 민간 시장에 나설 실적도, 해외 시장에 나설 신뢰도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 기반을 정부 스스로 허물고 있습니다. 공공 발주가 "일단 무료 오픈소스부터"로 굳어지면, 국내 기업이 공들여 만든 제품은 가격 비교 단계에서 탈락합니다. 성능이 어떻든, 기술지원이 어떻든, 보안 대응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무료냐 아니냐"가 먼저 물리는 순간, 나머지는 묻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배제입니다.
살아남은 국내 기업들은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제품을 파는 회사에서 외산 오픈소스를 설치하고 운영해 주는 회사로.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조직에서 해외 소프트웨어의 현지 서비스 조직으로. 이 전환은 말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제품 기업이 서비스 기업으로 바뀐다는 것은 지식재산도, 브랜드도, 글로벌 경쟁력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무너진 개발 역량은 예산을 다시 쏟아도 쉽게 복원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산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차별입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발비를 쓰고, 품질 인증을 받고, 기술지원 조직을 꾸리고, 유지보수 인력을 유지하고, 보안 대응 체계를 갖춥니다. 그 비용은 가격에 반영됩니다. 반면 글로벌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전 세계 수천 명의 개발자와 거대 플랫폼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가격 0원으로 들어옵니다.
공공기관이 "무료이므로 우선 검토"하는 순간, 국내 기업은 이 경쟁에 처음부터 낄 수 없습니다. 품질로 겨루는 것이 아닙니다. 가격으로 배제되는 것입니다. 외국의 거대 생태계가 0원으로 들어오는 시장에서 국내 기업에게만 품질, 인증, 책임, 납품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이름만 다를 뿐, 구조는 덤핑입니다.
공공조달은 숫자가 아니라 산업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전력, 철도, 국방, 반도체, 배터리 산업이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 뒤에는 공공 수요가 있었습니다. 국가가 먼저 사줬고, 국내 기업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키우고 세계 시장에 나갔습니다. 공공조달은 단순 구매가 아닙니다. 국가가 어떤 산업을 키울 것인지 선언하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에서만큼은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이 국내 공장을 짓도록 지원하고, 배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공공 문을 두드리면, 정부는 "무료 오픈소스가 있는데 왜 돈을 주고 사느냐"고 묻습니다. 제조업에는 산업정책을 쓰고, 소프트웨어에는 비용절감 논리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개발자는 많지만 글로벌 소프트웨어 브랜드는 없습니다. SI 기업은 넘치지만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패키지 소프트웨어 제품은 드뭅니다. 공공 사업에 수십조 원이 투입되었지만, 그 돈이 국내 기술자산으로 축적된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예산은 썼는데 산업은 자라지 않았습니다.
가장 비싼 것은 가격표가 없는 곳에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도 손실도 보이지 않습니다. 철강 공장이 문을 닫으면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기업이 제품 개발을 포기하고 서비스 하청으로 돌아설 때, 그것이 국가 경쟁력의 손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가격이 0원이라고 해서 비용이 0원인 것은 아닙니다.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쌓입니다. 국내 기업이 만들지 못한 제품, 자라지 못한 개발자, 세계에 나가지 못한 브랜드, 외국에 넘어간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 이 손실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청구서는 반드시 옵니다. 단지 조금 늦게 올 뿐입니다.
공짜 소프트웨어를 많이 쓰는 나라는 소프트웨어 강국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책임지고, 세계에 파는 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입니다.


